|
지난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6년 3월 대규모 철도노조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김영훈 전 철도노조 위원장(현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업무방해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중략)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중략) 경우에 업무방해죄가 성립된다”며 종전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했다. 지금까지 판례는 “모든 파업은 원칙적으로 업무방해죄 구성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취지가 담겨 있었다.
24일 민주노총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공동주최한 이번 판결에 대한 긴급토론회.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번 판결이 노동기본권에 관한 판례를 변화시키는 이정표가 되는 긍정적 의미를 가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
 |
|
| ▲ 3월24일 열린 파업 노조 업무방해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긴급토론회에서 김진 변호사가 토론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신동준 |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 요지는 파업은 제한된 경우에만 업무방해죄 위력에 해당한다는 것”이라며 “파업은 나쁘고, 파업은 범죄라는 기존 판례를 폐기하고 모든 파업이 업무방해는 아님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도 교수는 1991년 이후 단순 파업까지 업무방해라고 봤던 판례에 비춰봤을 때 이번 판결로 인해 노동기본권을 대하는 법원 관점이 변화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도 교수는 파업 목적 정당성 여부가 업무방해죄를 성립하는 요건에서 제외된 것도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노조법에는 파업의 목적을 규정하고 있지 않아 노동자들이 그것에 대한 문제를 예측할 수 없다”며 “결국 경영권 사항에 대한 파업이라는 이유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왔다”고 이전 판례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로 인해 노사관계의 긍정적인 변화도 가능하다는 얘기도 있었다. 도 교수는 “이전 판례는 파업하기만 하면 원칙적으로 범죄가 되고 징계사유가 됐지만 이제 검찰이 파업의 업무방해 요건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이나 검찰도 부담을 가지게 됐다”며 “무조건 나쁜 기업도 특권을 누리고 노동자는 노조활동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했던 관례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검찰이 파업의 업무방해 요건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 참가자 대부분은 노조의 집단적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역시 잘못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경배 순천향대교수는 “파업권 자체가 노동자의 핵심적인 권리”라며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비롯한 광범위한 형벌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도 ‘쟁의행위는 고용주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라며 업무 지장 초래가 업무방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정한 바 있다”며 “노동자가 결근해 노무를 제공하지 않은 단순채무불이행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은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김 진 변호사도 손해액을 기준으로 한 법원 판단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 변호사는 “사실상 사업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 파업의 목적인데 손해액이 업무방해 기준이 된다면 대규모 사업장이나 공익사업장 파업을 발목잡는 논리가 될 수 있다”며 “이것은 실효성 있는 파업은 위법이고 실효성 없는 파업은 적법하다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앞서 이화여대 도 교수도 “이번 판결을 합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도 교수는 “근로제공 거부가 집단적으로 이뤄진 것을 문제삼고 있는데 한 사람이 하면 괜찮지만 여럿이 하면 범죄로 취급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이번 파업이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면 아파트 부녀회가 하는 불매운동도 업무방해죄가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업무방해죄 적용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천적으로 법 적용 자체를 금지하는 입법 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원장은 “업무방해죄는 실질적으로 노동운동의 족쇄가 되고 있고, 이것은 형사처벌, 손해배상청구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당한 파업권에 대해 위법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