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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엘 코므리(프랑스 노동장관) 법’ 폐기하라” “개정안은 실업자를 더 양산할 뿐이다”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와 낭트, 렌 등 주요 도시에선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열렸다. 파리에서만 2만명, 전국적으로 12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행진하며 프랑스 노동자의 성역과도 같은 ‘주 35시간 노동제’를 손질하려는 노동법 개정안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돌과 계란을 던졌으며, 경찰은 전기충격기와 최루탄, 섬광 수류탄으로 대응했다.
최근 집권 사회당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노동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프랑스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노동장관의 이름을 따 ‘엘 코므리 법’이라 불리는 이 개정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주 35시간 노동제’에 대한 부분이다. 개정안은 앞으로 노동자들이 주 35시간을 초과해 일할지를 기업별로 투표해 결정할 수 있으며, 예외적인 경우에는 주당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연장근무수당도 산별협약보다 낮게 책정할 수 있다. 정규직에 해당하는 무기한 정규 계약(CDI) 직원의 고용과 해고를 유연화했다.
또 기업의 수주가 감소하거나 새로운 경쟁·기술에 직면했을 때, 영업이익이 감소했을 때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직원을 해고하려면 고용주가 법원에서 경기침체 때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업무시간 외에 SNS를 통해 상사가 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것을 금지한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규정하는 등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조항도 일부 들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친기업적인 방향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사회당 정부가 “반사회주의적”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노동법 개정을 강행하는 이유는 실업률 때문이다. 프랑스 실업률은 10%가 넘는다. 실업자는 380만명에 이른다. 올랑드 대통령은 실업률을 낮추지 않으면 재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사회당 내에서도 올랑드 대통령과 마뉴엘 발스 총리, 엘 코므리 노동장관을 필두로 한 소수 개혁파가 ‘노동법 개정’의 총대를 매고 있다
이들은 기업들이 해고가 어려운 정규직 고용을 꺼리면서 대다수의 신규 일자리를 단기 계약직으로 채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노동법전은 총 3800여페이지에 걸쳐 방대하고 촘촘하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법정 근로시간은 주 35시간으로 규정돼 있다. 이처럼 노동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마련돼 있다 보니 해고도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 2월 일간 르파리지앵이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 보고서를 입수해 단독 보도한 뒤 국민들의 반발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지난달 31일엔 철도 기관사, 파일럿, 교사, 병원 직원 등이 대규모 파업을 벌였고 동조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향해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했다. 이날 파리 오를리 공항 항공편 20%가 취소됐으며 에펠탑 직원들도 파업해 영업을 중단했다. 파리 공화국 광장에선 학생들이 매일 밤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집권 사회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올랑드 정부는 노동법 개정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당내 좌파 성향 의원들은 개정에 부정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프랑스 경제학자들은 개정안 찬성 쪽이 더 우세하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장 티롤 등은 “프랑스의 노동자 보호 수준이 너무 높아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1세기 자본>을 펴낸 토마 피케티 등 파리경제대학 교수 22명은 “노동시장 경직은 정부의 재정지출 감소 탓”이라며 지난달 개정안 반대 성명을 냈다. 발스 총리는 “노동법 개혁으로 젊은이의 삶이 불안정해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사실은 젊은이들이 가장 많은 이득을 얻을 것”이라며 맞섰다.
프랑스 의회는 이달 말 노동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친다. 하지만 르파리지앵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18세 이상 프랑스인의 70%는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인터넷 서명 운동도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 120만여명이 참가했다. 노동법 개혁을 향한 올랑드 대통령의 ‘초강수’가 의회와 국민의 동의를 얻어 완벽히 실현되기까지는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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