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힘들어도 조금 더 간다” |
| 풍산 정리해고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비해고자 이영기 조합원 |
지난 10월 24~26일까지 2박3일동안 서울 일대에서 진행한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 노조파괴 중단 집중투쟁’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부산양산지부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이영기 조합원은 집중투쟁에 참여한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합원 78명 중 ‘투쟁성 78등’이라고 자평한다. 10월26일 인터뷰를 위해 찾은 국회 앞 농성장을 해고자 48명, 비해고자 30명이 지키고 있었다. 이영기 조합원은 비해고자이지만 해고자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지회는 2010년 임단협 파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해 12월 29일 기습매각이 이뤄졌다. 회사는 그동안 “매각은 없다. 헛소문이다”라면서 “가족경영”을 내세우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회사의 기습 매각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해인 2011년 10월 정리해고 77명 명단이 발표되는 등 우여곡절의 시간을 겪고 있다.
이영기 조합원은 “회사가 적자고 일이 없다고 해서 우리는 연월차 휴가를 억지로 소진했어요”라고 말한다. 회사를 매입한 쪽은 인수합병 전문가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문 없이 회사를 팔고 나가면 ‘가오(자세)’가 안나온다. 매각대금을 올리기 위해 유상증자를 해야하니 임금 30%를 깎아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었다. 이 사람들은 사기극으로 드러난 ‘카메론 금강석 투자’ 등 온갖 투기를 하는데 회사를 이용했다.
이 조합원은 “회사가 어려운데 과도한 성과급이 문제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영업이익 적자가 났다는 거예요. 우리는 화장실도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일했어요. 그런데도 정리해고를 하더라고요”라고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정리해고 하루 전에 명단이 발표됐고 저는 명단에 없었어요. 하지만 눈뜨면 공장에서 함께 생활하며 형, 동생 하는 사람들이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생각에 갑갑해서 미치겠더라고요.”
이 조합원은 고민 끝에 가족회의를 열었다. “아빠가 해고 당한 아저씨들을 두고 일하면 너희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말하지 못 하겠다”고 설득했다. 당시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과 아내가 아빠를 이해해줬다. “그렇지만 솔직히 3~4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어요. 이렇게 오래 끌줄 그 땐 몰랐죠.”
월 50만원에 생이별하는 가족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가장이 가져오는 월 50만원은 학원비 줄이고 용돈을 줄여도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 였다. 게다가 30년 동안 당뇨와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병원비까지 오로지 이 조합원의 몫이었다. “은행돈 쓰다 보니 이자도 산더미 같이 늘더군요.” 아내는 생활비가 부족하자 부산을 떠나 임금을 더 높게 준다는 경기도 화성으로 일자리를 옮기겠다고 했다. 처음엔 “가족은 같이 있어야 한다”면서 반대했지만 아내가 말없이 보여준 가계부를 보고 할 말이 없었다.
아내는 화성 직장에, 자신은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투쟁에, 아이들은 부산에서……. 가족이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게다가 화성에서 여러 가지 흉악한 사건들이 많았다는 보도 때문에 이영기 조합원은 수시로 화성에 있는 아내의 안부를 물어야 했다. 어느 날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아이들이 대전으로 소풍을 간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학교에 낼 소풍비용이 없었다.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정말 힘들고 그만두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 처자식에게 제 역할을 못 하는 가장이라는 자책감이 머리를 짓눌렀다. “작년에 영하 14도가 넘는 대리석 위에서 노숙농성을 한 적이 있었죠. 그 때도 이때처럼 힘들지 않았어요.” 결국 이 조합원은 오는 11월 부터 부산에 있는 아이들을 화성으로 데려와 엄마와 함께 지내게 하기로 했다.
아파하는 것을 보는 것이 힘들어 같이 간다
“제가 가장 안타까운 게 정치인들 때문이예요. 문재인은 부산 사람이잖아요. 대통령 돼야 해결해 주겠다고 하는데, 대통령 되기 전에 왜 안 되나요? 그럼 완벽한 부모가 되기 전에 아이는 낳지도 기르지도 말란 말과 똑같잖아요.”
그
래서인지 이영기 조합원은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다. “가장 힘든 것은 같이 일했던 형, 동생들이 아파하는 것을 보는 것이예요. 다독여줘야 하는데 안아줘야 하는데, 고개 숙이고 처지는 걸 보는 게 힘들어요.” 이 조합원은 힘주어 말한다. “힘들어도 가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내 자식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으려면 힘들어도 조금 더 가려고 해요.”
여의도 농성장에 다시 자리를 잡은 이영기 조합원과 풍산마이크로텍조합원들. 풍산마이크로텍지회 해고자들과 비해고자들의 투쟁은 이렇게 속깊고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