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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멀쩡한 사람이 없다. 일하다보면 이러다가는 정말 죽겠다 싶을 때가 있다.”
프랑스 르노 그룹이 2000년 삼성자동차를 인수한 뒤 르노삼성자동차는 연간 생산량 10만대 수준에서 현재 30만대 생산으로 날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21일 금속노조 가입 및 지회 설립 총회를 위해 모인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자들은 현 노동강도가 가히 살인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노조 가입에 나선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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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21일 열린 르노삼성차지회 창립 총회에서 조합원들이 지회 임원 선출 투표를 하고 있다. 신동준 |
“다른 완성차 공장 얘기 들어보니까 UPH가 40정도라고 하던데 우리는 지금 64예요. 한 시간에 20대를 더 만들고 있다는 거죠”
UPH는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시간당 생산물량을 말한다. 이들은 하나의 라인에서 8개의 차종을 혼류생산하는 르노자동차의 생산 체계도 노동자들을 쉴 새 없이 작업으로 몰아넣는 요인이라고 덧붙인다.
노조가입 첫 이유, 노동강도
노동강도가 얼마나 심하냐는 질문에 지회설립(21일) 총회에 모인 노동자들이 여기저기서 불만을 터뜨린다.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다 르노삼성차로 오게됐다는 한 조합원은 “현대차에서는 3~4명이 붙어서 하는 일도 여기에서는 1명이 한다”며 노동강도가 2~3배 심하다고 토로한다. 또 다른 조합원은 “30명이 일하는 라인에 적어도 3~4명은 보조 인력이 있어야 되는데 1~2명밖에 없다”면서 “몸이 아프거나 쉬어야 될 일이 있어도 내가 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더 고생해야 하니까 노동자들끼리 눈치를 보게 된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화장실 가는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보장이 안 된다”고 한 조합원이 털어놓자 주변 조합원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은 2시간 작업 뒤 10분 휴식을 기본으로 한다. 쉬는 시간이 아닌 시간에 화장실을 가야 할 때도 보조 인원이 부족하다보니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다. 화장실을 가려고하면 관리자 질타가 쏟아진다는 설명이다. 이곳 노동자들은 “관리자가 ‘쉬는 시간에 안가고 뭐했냐’고 하는데 화장실 한 번 간다고 이런 인격 모독을 당해야 하냐”면서 “내 장이 10분 쉬는 시간에만 맞춰서 안 좋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불만을 쏟아낸다.
“화장실 가려면 인격모독까지”
지회설립 총회 만난 노동자들에 따르면 이 곳 노동자들 중에는 2~30대 초반의 젊은 층도 많다. 하지만 모두 몸은 골병이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한 조합원이 “너무 힘들어 처음 일할 때는 한 달 새에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고 얘기하자 바로 옆에서 “나는 14kg 빠졌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 쉴 새 없는 밀려드는 ‘물량’과 반복되는 작업에 목, 어깨, 무릎, 손목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는 게 이들의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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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21일 열린 르노삼성차지회 창립 총회에서 서수한 부산양산지부 수석부지부장이 조합원들에게 환영한다는 내용의 말을 하고 있다. 신동준 |
“병원에서 2주 정도 쉬라고 하지만 쉴 수는 없고, 몸이 아프다고 회사에 얘기하면 회사 내에 있는 물리치료실에 가라는 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물리치료실 방문마저도 작업 라인을 비울 수 없어 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6년 동안 물리치료실에는 열 번도 못 가봤다”는 한 조합원은 “계속 뺑뺑이 돌면서 골병드는데 물리치료실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강조한다.
또 다른 조합원은 단지 하루 일하는 노동강도만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잔업과 특근에 피로를 풀 시간이 전혀 없다는 그는 “입사 초기에는 친구들 모임도 많이 나갔는데 이제는 체력이 안 되서 나갈 수조차 없다”고 토로한다.
“나, 14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이 뿐만 아니다. 이들의 근무형태도 문제다. 이들은 현재 8시간 근무에 2시간 추가 잔업까지 10시간씩 교대 근무를 한다. “한 주 야간 근무하고 토요일에 야간 특근까지 하고나서 잠들면 일요일 오후에나 일어난다. 그리고 바로 월요일 주간 출근하면 14일을 꼬박 일하는 느낌”이라고 한 조합원이 말한다.
잔업과 특근이 노동자의 자발적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다 하는데 너는 왜 안 해”라는 분위기 때문에 억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증언이다. 한 노동자는 “밖에서 보면 나름대로 돈도 많이 받으면서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고, 물론 나도 연봉이 많이 오르긴 했다”면서도 “그건 일을 그만큼 많이 했다는 증거이며 나는 더 이상 이대로는 정말 살 수가 없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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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21일 열린 르노삼성차지회 창립 총회에서 지회장에 의해 선임된 지회 상임집행 간부들이 조합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신동준 |
1살과 2살 갓난아이 둘을 두고 있다고 소개하는 한 노동자는 “이런 상황에 노조에 가입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대로 5년만 더 일하다가는 정말 몸이 다 망가져서 아예 쓸 수 없게 될 것 같다”고 강조한다. “주변 동료들이 차라리 지금 해고되면 몸 건강할 때 다른 곳에 취직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까지 한 정도”라고 말을 잇는 그는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자들은 건강하게,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하다”고 덧붙인다.
“정말 이대로는 살 수가 없다”
이들은 회사 내에 노동자단체라고 만들어져있는 ‘사원대표자위원회’(아래 사대위)는 이런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올 해 초 회사에서 노동강도를 더 높이겠다는 추가 생산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한 조합원은 “지금까지 하는 일로도 죽겠다는데 더 일하라니 말이 되냐며 조립라인에 일하는 노동자들한테 자체적으로 설문조사 했을 때 90%가 넘게 반대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당시 사대위는 이런 노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회사 계획을 그대로 합의했다.
한 조합원은 “현장 의견을 전혀 듣지 않는 사대위에 대한 불신과 우리 앞날에 대한 불안 때문에 금속노조에 가입하는 이 자리에 왔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노조 가입 배경을 설명한다.
회사가 돌리면 돌리는 대로 일하는 기계가 돼서, 나도 모르는 새 몸이 병들어 버린 이곳 노동자들. 이들이 노동조합에 첫 발을 내딛는 자리에 모였을 때 속으로 생각한 것은 모두 같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이제는 좀 바꿔야 한다는 것. 이는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자들의 절실한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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