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매일노동뉴스>가 단독보도한 ‘파견확대, 세계적 추세 아니다’ 기사 때문에 고용노동부가 야단법석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발단은 '간접고용 규제강화가 세계적 추세, 한국 경영계만 파견을 늘려라?'라는 제목의 기사 자료로 활용된 고용노동부의 2010년 학술연구용역보고서 '외국의 사내하도급 및 파견 현황 및 제도 실태조사'가 외부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고려대 산학협력단(단장 김영근)에 용역발주를 주고 지난해 12월에 완성된 이 보고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노동부가 이렇게 야단일까. 한마디로 해외 제조업, 특히 자동차업체의 사내하도급에 대해 노동부가 지금까지 주장해 온 내용과 상반되는 사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와 한국경총을 비롯한 사용자는 물론, 노동부는 "간접고용과 같은 노동유연화는 글로벌 트렌드이며, 정규직의 고용경직성과 강성노조 때문에 사내하도급과 같은 간접고용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늘 강조했다.
| |
 |
|
| ▲ 폭스바겐 독일 드레스덴 공장 노동자들이 조립작업을 하고 있다. |
하지만 보고서는 최근 들어 폭스바겐·닛산·르노 등 해외 자동차업체들은 비정규직의 확산이 지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직접 생산공정에 투입된 파견노동자들을 직접고용 형태의 기간제 노동자로 대체하거나,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더욱이 현재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로 쟁점화되고 있는 직접생산공정에 투입된 사내하청 노동자의 경우 각국의 사례조사에서 그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3개월 넘게 공개되지 않은 노동부 보고서
비정규직과 사내하청과 관련해 재계와 정부의 기존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이었는가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노동부가 발주한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닛산자동차의 경우 2010년 11월 기준으로 기간제와 파견노동자를 포함해 비정규직의 규모가 정규직 대비 약 12.4%다. 지난해 3월 이후 제조업의 파견금지를 중심으로 하는 법률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사용자 스스로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파견노동의 투입을 없애고 기간제노동으로 전원 대체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사내도급을 직접제조공정에 사내하청의 인력을 투입할 경우 파견법 위반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분리되거나 완전도급이 가능한 일부 간접부서에만 사내하청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사내하도급의 천국이라고 사용자와 정부가 주장해 온 일본 자동차업체조차 직접생산공정 부서에는 사내하청 투입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독일의 경우 2003년 노동법의 규제완화 조치로 인해 제조업에서 기간제 및 파견노동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지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및 노동조건의 격차가 심화되고 간접고용 방식의 파견이 지닌 고용불안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비정규직법 개정논의가 활발하다. 또한 법개정 논의와 무관하게 자동차업체들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적용과 파견노동자의 정규직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폭스바겐의 파견노동자의 경우 동일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과 동일임금을 받고 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9월 약 400명의 파견노동자를 정규직화한 데 이어, 지난달 23일 노사 대표가 산하 6개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2천200명의 파견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1천250명의 견습생(기간제)의 정규직화에 합의했다.
이러한 사실은 노동부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폭스바겐의 경우 직·간접적 생산공정에서 일하는 사내하도급 노동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구내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또한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보고서는 폭스바겐 홍보담당자의 말을 빌려 지난 몇 년에 걸쳐 파견노동자의 약 40%가 이미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보고하고 있다.
노동부, 청와대·재계 눈치보기 언제까지
이와 같이 일본과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은 간접고용의 확산이 지닌 사회적 폐해를 직시하고 파견노동 및 사내하도급에 대한 보다 엄격한 규제장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자동차업체 스스로 비정규직의 축소 및 정규직화 전환을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동부 보고서는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국민의 세금이 최소 5천만원 이상 들어갔고, 이미 지난해 12월에 마무리된 이 보고서를 왜 공개하지 않은 것일까. 보고서의 내용이 재계를 화나게 만들고 청와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자기검열 때문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자신이 주장해 온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숨기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노동부는 용역보고서를 국민들에게 즉각 공개해야 한다. 또한 사내하청 불법파견에 대한 사실왜곡을 중단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진정성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