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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호소합니다.


글쓴이: 친구

등록일: 2012-02-25 09:06
조회수: 1078
 
얼마전 한진중공업 다니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서로 통하는 친구라 가끔씩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친구는 회사 자랑을 늘어 놓더군요. 한국 조선산업 시작은 한진중공업이라더군요. 회사 앞에는 <대한민국 조선 1번지>라는 비석도 세웠답니다. 필리핀 수빅에는 축구장 9개 크기의 세계최대 도크의 조선소도 있다고 입에 침을 튀기며 자랑했습니다.

질 수 있습니까? 저도 반격했습니다. S&T대우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소총 회사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내 손으로 만든 총을 안 만져 본 사람 없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조선 1번지... 웃기지 마라. 우리는 대한민국 최초로 방위산업을 시작한 <조병 1번지>라고 목소리도 좀 높였습니다. 하나 더 붙였죠. 지금 니가 타는 차 중에 눈에 보이는 곳, 안 보이는 곳에 우리회사 제품 들어가 있다구요...

역시 한국 사람은 소주를 먹어야 진심이 나옵디다. 자랑만 하던 친구가 몇 순배 술잔이 돌면서 속마음을 털어 놓더군요. 사실 제가 궁금해서 먼저 툭 던졌습니다.

“회사는 괜찮나?”

“신문도 안 보나? 일 하나도 없다. 도크에 배 한 척 없는 조선소가 무슨 회사고? 가뜩이나 일도 없는데 노조는 2개나 되지... 맨날 니가 옳니, 내가 옳니 저거들끼리 싸우기만 하고... 회사는 누구랑 얘기해서 문제를 풀어야할지 갑갑하고... 선주들이 이 꼴 보면 겁나서 배 안준다고 영업하는 사람들은 불만만 쌓이고... 세계경제 위기다, 조선산업 불황이다 하고 바깥 탓만 하는데, 다 쓸데없는 짓이다. 집안 단속부터 잘 해놔야 밖에서 뭔 일을 해도 자신 있는 거 아이가? 요즘 솔직히 마누라하고, 애들한테 부끄럽다. 한진중공업 다닌다면 걱정부터 한단다. 부산에서 제법 잘 나가던 회사가 우째 이 꼴이 되었는지...참 답답하다.”

왠지 마음이 짠 해 졌습니다. 용접 불꽃 튀기며 뙤약볕과 싸우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감옥 같은 교육장에서 하루 종일 교육만 받는다고 속상해 하는 친구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사실 묘한 동질감에 어깨를 감싸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도 그랬으니까요.

기억나십니까? 대우그룹 망하면서 그 쓰나미가 철마골에도 덮쳤지요. 일감이 없어 고용유지훈련, 순환휴가로 연명하면서 빨리 오늘이 갔으면 하고 한숨만 쉴 때 말입니다. 참 암담했지요. 믿었던 대우자동차가 추락하고 덩달아 우리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회사가 쪼그라드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는 소나기를 막아준 망가진 우산만 원망하면서 모두 패배주의에 깊숙이 물들어 갔죠. 우리가 얼마나 바보인지는 GM이 대우차의 새주인이 되면서 알았습니다.

가격은 경쟁사보다 2배나 높고, 기술은 20년전 그대로에다, 품질까지 엉망인 제품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죠. 누가 삽니까? 게다가 우리 종업원들은 참 느긋했습니다. 회사 어려워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왔으니까요. 아무리 혁신을 외쳐도 그 건 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회사의 일이었죠. 그런데도 노동조합의 투쟁에는 열정적이었습니다. 회사가 썩어가는 것은 두렵지 않아도, 노조의 힘이 약해지는 것은 바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들입니다. 친구의 처진 어깨를 보면서 또 한번 마음이 아팠습니다. 얼마나 힘들까? 무슨 말로 위로를 해 줄까? 대한민국 조선 1번지의 자존심이 순식간에 무너졌는데 그 어떤 말로도 상처를 덮어 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자신감을 잃지 말라는 위로가 다였습니다. 이 또한 내가 받았던 위로의 전부였거든요.

역사를 통해 오늘을 보면 문제가 보이고 해결의 문이 열립니다. 벼랑 끝에 섰던 과거를 생각하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고민하게 됩니다. 말은 이래도 사실 단순하지 않습니까? 회사는 지속적인 발전을 통해 고용안정과 종업원의 복지를 추구하는게  목적이고, 노조는 회사의 발전 속에서 조합원의 후생복지를 위해 활동하는 것이 존재 이유고... 따지고 보면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습니까? 차이가 있다면 목적을 향한 수단과 방법이겠지요.

아시다시피, 지금은 어려운 시기입니다. 적자투성이 사업을 그대로 두고만 볼 것인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수익성은 점점 나빠져 가는데 수십명의 사원들은 눈총 받으며 불안하게 일해야 하는가? 흑자사업의 이익을 적자사업에 계속 메워가며 회사는 제자리를 걷다 후퇴할 지도 모르는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아마도 한진중공업은 이 고민의 지점에서 노와 사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충돌이 길어져 영도조선소의 도크를 텅 비게 만들었을 겁니다. 내가 겪었던 친구의 아픔, 그래서 더 쓸쓸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이런 고통의 전철을 이미 밟았습니다. 조합원들 아니, 전사원들은 이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회사발전과 고용안정 그것보다 더 중요한게 무엇입니까? 파산의 아픔을 겪은 GM의 직원들은 당장 어디서든,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일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인력운영의 유연성이 얼마나 큰 경쟁력이 되는지 잘 알고 적극 협조한다는 뜻이지요. 근데, 유독 우리 지회는 아픔의 역사를 겪고도 여전히 낡은 유물같은 투쟁방식만을 고집하더군요.

진실을 조작하고, 선전을 앞세워 조합원을 선동하고, 경영진을 비하하는 말로 노사신뢰를 망가뜨리는건 이제 고전입니다. 솔직히 방산이동 문제, 너무나 간단하지 않습니까? 조합원의 고용안정과 SA사업의 적자문제.. 이 두가지만 생각하면 초등학생도 바로 답이 냅니다. 계획을 못 믿겠다, 절차가 틀렸다... 이런 식으로 니가 옳니, 내가 옳니 하고 시간만 보내다 한진중공업의 텅 빈 조선소 같이 되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그래서 조합원의 고용에 문제가 있으면 지회가 책임질 수 있나요? 집안 단속에는 내몰라라 하고, 몰락하는 한진중공업 노조를 대신해 금속노조 부양지부의 선봉이 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회사와 지회의 존재 이유는 회사발전과 종업원의 고용안정입니다.

혹시 어린이 영어캠프에 한번 와 보신 적 있습니까? 캠프 2주일 동안 본관 3층은 시끌벅적 하지요. 막 떠듭니다. 선생님들이 아무리 야단치고 말려도 듣지 않는답니다. 왠지 아십니까? “우리 아빠 회사인데, 니가 뭔데...” 뭐 이런 반응이랍니다. 아빠 회사는 곧 나의 나와바리라고 생각하는 하는 거지요. 맹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젠 말리지도 않는답니다. 참 귀엽지요. 저도 인사 잘하는 녀석들을 볼 때마다 조카 같다는 생각이 무지 듭니다. 모두가 한 가족 같지요.

진정으로 호소합니다. 이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터전, 누가 만들고 지킵니까? 바로 우리들 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다음세대에도 아빠회사에서 기죽지 않고 맘껏 뛰놀고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롱초롱한 아이들 눈망울 속에 투쟁이라는 원색적 플래카드보다 땀흘리는 아빠의 얼굴을 담아 주고 싶습니다. 엄마 손잡고 시장에 가면 잘나가는 아빠회사 칭찬에 어깨 으쓱한 자부심 가졌으면 합니다. 내 아이가 커서 그 아들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지회장님, 그리고 간부님들! 어깨가 무겁지 않으신가요? 아침 새벽이슬 맞으며 이런 생각 하면서 사원들에게 손 흔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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