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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비정규직 점거농성 현대차공장 잠입 르포
캄캄하다. 전기가 끊겨 어둠에 파묻힌 공장 안에 위태롭게 촛불만 흔들릴 뿐 조용하다. 스스로 감금한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대신 초겨울 칼바람을 버텨주는 은박종이 이불 사이로 여기저기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만 요란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11일째로 접어들던 24일 밤 울산 현대자동차 1공장은 어둠과 침묵 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물과 전기와 음식이 끊기고, 침낭은 반입이 금지되었다. 농성중인 노동자들은 하루 2끼만 먹고, 라면과 김밥으로 일주일을 버티고 있다. 감기에 걸린 노동자들은 비실거렸다. 바깥 동료가 몰래 사다 준 감기약을 ‘꿀꺽’ 삼킬 뿐이다. ‘인간으로 살 권리’는 철저하게 강금당했다. 농성장 안으로 음식물을 넣어주려다 제지당한 한 정규직 직원은 “불법 파업을 벌이더라도 인간의 기본적 권리는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말 해도 너무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인간으로 살 권리마저 감금당했다
“힘들지요. 하지만 정규직 전환 약속받기 전에는 절대 못 나갑니다.”
경계근무를 서다 잠시 쉬러 농성장으로 들어온 김수일(가명·38)씨도 많이 지쳐보였다. 그러나 김씨는 “대충하다가 말 거면 이렇게 오랫동안 점거 농성하지도 않았다”며 “법원 판결대로 정규직 전환을 꼭 약속받겠다”고 말했다.
8년째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농성에 참여한 사중선(가명·30)씨는 “악에 받힌다”고 몸서리쳤다. 사씨는 “농성을 벌이면서 회사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것을 보며 갈 때까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들더라”고 말했다.
파업 11일째, “정규직 전환”이라는 농성 노동자들의 요구는 한결같았다. 이상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장은 “불법파견을 없애고 현대차의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가 정규직이 될 때까지 꺾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 정규직 지원군에 ‘빨갱이보다 못한 인간” 문자 테러
점거농성을 시작하면서 연일 1공장 앞에서 벌어지던 노사간 몸싸움은 21일 황아무개씨의 분신 시도 뒤 잦아들었다. 그러나 농성장 입구에서는 노사가 5미터 간격을 두고 보초를 서고 있다.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여전히 공장 앞에 진치고 있다.
노조 쪽 보초를 서는 이들 사이에 현대자동차 정규직 직원들이 끼어 있다. 1공장 대의원 35명 모두가 기꺼이 최전선 보초 근무를 자원했다. 이들은 이번 비정규직 점거농성의 든든한 우군이다.
이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회사쪽 사람이 보내는 것으로 보이는 출처 불명의 문자 메시지가 5분 마다 휴대전화로 날아든다. 김철환 1공장 정규직 대의원의 휴대전화도 5분 간격으로 비난 문자를 토해냈다.
“빨갱이보다 더 나쁜 인간 몇 명 때문에 공장 전체가 생산을 못 하는구나. 절대 용서받지 못할 인간.” “회사를 좀 먹이는 암적 존재! 살 가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아. 제발 그 자리에서 죽어라.”
김씨가 문자를 보여주며 씁쓸하게 웃고 있는 사이에도 새로운 문자가 날아왔다.
# 정규-비정규 연대와 차이 사이
현대차가 “비정규직 노조(지회)는 교섭대상이 아니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에 정규직 노조가 회사와 비정규직 지회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이번 점거농성은 성립할 수 없었다. 정규직 노조의 도움이 절실한 이유다.
그러나 끈끈한 연대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규직 노조는 “점거농성의 불씨가 된 동성기업 해고자 문제부터 우선 풀고 정규직 전환은 농성을 푼 뒤 논의하자”는 입장이지만 비정규직 지회는 “전제조건 없는 즉각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온도차는 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의 총파업 결정을 놓고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미묘한 입장 차이를 드러낸 것에서도 표출된다. 금속노조는 22일 “현대차가 30일까지 불법파견 관련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12월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투쟁에는 책임이 수반돼야 한다”며 “금속노조 총파업 동참은 지부 총투표를 거쳐 결정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농성을 벌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농성을 푸는 순간 모든 게 끝”이라며 우려했다. 박재현(가명·33)씨는 “금속노조가 총파업을 결의했는데 정작 우리 회사 정규직 노조가 애매한 태도를 보여 불안하다”고 말했다. 사중선씨도 “동성기업 문제는 농성의 일부분이지 핵심 사안은 아니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 “법대로 하면 금방 풀리는데…”
24일 저녁, 차가운 밤 공기에 콜록거리는 노동자들에게 반가운 여론조사 소식이 날아들었다. 울산혁신네트워크(대표 하부영)가 울산사회조사연구소에 의뢰해 지난 21~22일, 만20세 이상 울산시민 501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현대차가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73.9%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회사가 교섭에 나설 리는 만무하지만, 모처럼 날아든 기분 좋은 뉴스에 농성장에 박수가 터지고, 웃음꽃이 피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말라하는 교섭은 이뤄질까? 양쪽의 입장 차가 워낙 커 쉽게 예측하긴 어렵다. 게다가 이번 농성을 재계와 노동계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이번 싸움은 사실상 노사 양쪽의 대리전이다. 그 결과에 따라 하도급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업계 전반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이렇게 이해관계가 첨예한 상황에서 해결책은 유일하다. ‘법’이다. 인간으로 살 권리를 감금당한 채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노동자들이 캄캄한 허공에 대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법대로 하면 금방 풀리는데….”
<동영상 자료>
http://www.hanitv.com/regate.php?movie_idx=1718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에서 발췌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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