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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떡 하나 주니까 목숨까지 내놓으랍니다


글쓴이: 조수원열사정신계승사업회

등록일: 2011-01-05 17:48
조회수: 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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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면 죽는다 /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하나되어 우리 나선다 / 승리의 그 날까지

 

파업가의 한 구절이다. 대구 상신브레이크 노동자들은 올 해 이 가사를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지난 여름 회사의 직장폐쇄 이후 공장 안팎의 풍경은 많이 변했다. 지난 11월 새롭게 당선된 지회 집행부는 금속노조 탈퇴 총회를 진행했고 결국 가결됐다.

 

4명의 상신브레이크지회 조합원들이 패배했던 투쟁을 반성하고 다시 민주노조를 복원해야 한다며 공장 정문 앞에 천막을 쳤다. 2010년을 사흘 남겨둔 12월28일, 부당징계 철회와 민주노조 복원을 위한 천막 농성 27일차인 김대용, 정준효 조합원을 만났다.

 

민주노조 15년 역사, 깃발이 사라졌다 


김대용 조합원은 1996년 상신브레이크노동조합이 민주노총에 가입하던 당시 위원장이었다. 1987년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한동안 어려움도 많았다. “그때 정말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해고된 사람도 많았지. 그렇게 어렵게 만든 민주노조였는데...” 1997년 노조에서 만든 책자를 넘겨보는 김 조합원의 말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매 년 한 두 명씩 해고되고 또 싸우면서 노조를 지켜왔다. 그리고 올 해 1996년 이후 처음으로 5명이 해고됐다. 김 조합원은 지회 간부도 아니었지만 불법파업을 '배후조종' 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민주노조, 김 조합원이 얘기 중에 계속 강조했던 말이다. 자부심도 대단하다. “우리가 2000년에 대구 지역에서 가장 먼저 금속노조에 가입했던 곳이예요” 그랬던 지회가 올 해 금속노조 깃발을 내리겠다고 결정했다. “민주노조를 지키겠다는 집행부 의지가 없으면 이렇게 밀리는 건 시간문제라는 걸 알았죠. 한 번 양보하고 내주기 시작하니까 끝도 없더라고” 김 조합원은 이것이 이번 투쟁의 가장 큰 교훈이라고 설명한다.

 

올 해 투쟁의 시작은 외주 공장 설립 문제가 터지면서였다. 상신브레이크는 이미 계열사를 하나 둘 늘려가는 상황이었고, 그만큼 조합원들의 고용 불안도 컸다. 단체협약에도 더 이상 외주 공장을 설립하지 않고 불가피하게 설립할 경우 노조와 협의한다는 내용이 이미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지회에서 ‘대외노조비’ 문건을 입수했다. 문건의 내용은 대구 달성2차 산업단지에 7천 평 규모의 외주 공장을 짓겠다는 것.

 

지회가 단체협약에도 명시돼있는 사항이니 교섭에서 논의하자고 했지만 회사는 노사협의회에서 얘기하자며 거부했다. 타임오프까지 빌미 삼아 노조가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고 몰아갔다. 그리고 8월23일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하나 양보했더니 두 개 더 내놓으라는 회사

 

“처음 직장폐쇄 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진짜 중요했어요. 그런데 막상 닥치니까 준비도 전혀 안돼있고 제대로 대응도 못해보고 다 양보해버린거죠” 김 조합원은 현재 상황까지 오게 된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지회는 직장폐쇄 직후 외주공장 관련 교섭 요구안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교섭에서 쟁점이 됐던 문제들도 대부분 회사안을 수용하고 이후 파업계획도 철회했다. 더 이상 쟁점이 없었기 때문에 이정도면 직장폐쇄를 풀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김 조합원의 설명이다.

 

하지만 회사는 하나를 양보했더니 두 개를 내놓으라고 나왔다. “다 자기들 뜻대로 되니까 이참에 금속노조를 아예 없애버리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회사는 직장폐쇄 기간 임금을 요구하지 말 것, 회사가 제시하는 교육 이수할 것, 불법파업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징계와 현장복귀 시 배치전환 등에 동의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한 마디로 노조를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김 조합원은 다른 것들은 다 수용하더라도 차마 불법파업을 인정하고 지회 간부 징계에 노조가 동의하라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미 회사는 일용직을 고용하고, 사무직과 직반장부터 시작해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현장에 복귀시킨 뒤였다. 회사는 복귀한 조합원들의 휴대폰을 압수하고 공장에 반 강제로 감금한채  일을 시켰다.

 

“법적으로 직장폐쇄 기간에도 노조 사무실이나 휴게실, 식당, 화장실은 들어갈 수 있는데 지회에서 공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싸우겠다고 결정을 했어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 조합원들이 안에 갇혀 있는데 현장을 다 빼앗겨 버렸으니 할 수 있는게 없었죠” . 58일의 직장폐쇄 기간을 돌아보는 두 조합원은 아쉬움이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아쉬웠던 때는 10월4일이예요” 정준효 조합원이 말했다. 그 날은 직장폐쇄 이후 처음으로 조합원들이 공장에 들어갔던 날이다. 어떻게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다고 결의했던 때다. 하지만 사장과의 면담 약속을 잡는 것으로 그 날 투쟁은 마무리됐다.

 

 “그 날 앞두고 조합원들이 모여서 토론을 했어요. '개별적으로 복귀할래, 아니면 끝까지 같이 남아서 싸울래'. 그때 70% 넘는 조합원들이 같이 싸워야 한다고 결정했어요” 정 조합원은 당시 집행부들도 패배감에 빠져있었지만 오히려 조합원들의 의지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제대로 투쟁하지 못한 결과 조합원들도 지쳤고 15년간 지켜온 민주노조가 위태로워졌다.

 

가정이냐 의리냐, 선택해

 

회사는 금속노조 탈퇴에 혈안이 돼있었다. 회사 관리자들은 “해고자 명단이 나왔지만 아직 대표이사 결재가 남았고, 확정된 건 아니다. 금속노조 탈퇴하면 명단에서 빼주겠다. 징계도 최소화 해주고 임금도 더 주겠다”며 지회 간부들과 조합원들을 흔들었다. 김 조합원은 “심지어 해고 대상자들 불러서 ‘주동자를 김** 한 명으로 몰아라. 가정이랑 의리 중 선택하라’고 하면서 해고에서 제외시켜 주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 과정에서 지회 집행부가 사퇴하고 선거가 진행됐다. 두 팀이 나왔지만 금속노조 탈퇴를 공약으로 내건 집행부가 당선됐고, 탈퇴 총회까지 마무리됐다. 회사는 집요했다. ‘금속노조 탈퇴’라는 공약을 완수하기 전까지는 새로 당선된 집행부와도 대화를 않겠다고 버텼던 것. 성과금과 격려금도 탈퇴하면 주겠다고 했다.

 

상신브레이크가 금속노조를 탈퇴하자 계열사인 산도고경으로 불길이 옮겨 붙었다. 김 조합원은 산도고경 관리자가 산도고경지회 간부를 불러 “임금 3년치 줄테니 조합원들 노조 탈퇴시켜라. 방법 모르면 상신 가서 배우면 된다”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2011년, 민주노조 다시 세울 겁니다

 

 

 

 

 

2011년 새해 소망을 물어봤다. 김 조합원이 “복직”이라고 하자 정 조합원은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복직은 당연히 될 겁니다. 소원이랄 것도 없죠. 이길건데”라며 살짝 타박을 한다. 김 조합원은 내년 소원으로 상신브레이크에 민주노조를 다시 세우는 것을 꼽는다. “내년 9월이면 선거가 있거든요. 조합원들한테 지금 문제가 뭔지 잘 알리고 현장에 복직해서 열심히 싸워서 꼭 승리해야죠”

 

정 조합원도 소원 하나를 이야기한다. 부인과 자신을 꼭 닮은 예쁜 아이를 갖고 싶다는 것. “올 해 여름부터 내내 투쟁하고 직장폐쇄에다 해고까지 당하고 나니 부인도 스트레스 받고 우울해하기도 하고 많이 힘들어해요. 아이 낳고 예쁘게 키우면 사는 게 좀 더 좋아지지 않겠어요?” 투쟁 기간 내내 조합원들의 부인들도 현장에 같이 뛰어다녔다. 지금도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직장폐쇄와 투쟁의 패배, 그리고 노조 탈퇴까지. 아픈 일들이 많았던 한 해였다. 하지만 대구에서 만난 이들은 패배 보다는 다시 맞을 승리를 기원하고 있었다. 조만간 현장에 다시 돌아가 당당히 노조 깃발을 세울 것을 기대하며.

이번 투쟁은 이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집행부가 투쟁하지 않고 한 번 밀리고 양보하면 계속 밀린다는 것. 또 하나는 직장폐쇄가 시작되면 법적으로 보장된 노조사무실, 식당, 화장실이라도 들어가 어떻게든 현장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고자 4명은 이대로 포기하지 않고 현장에 다시 민주노조를 세우기 위해 투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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