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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녁 먹자던 아버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글쓴이: 교선부장

등록일: 2012-04-05 14:12
조회수: 1592
 

저녁 먹자던 아버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조선소, 한국사회의 축소판·③] 하청 노동자로 왜 일하나

○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연재를 시작하며:<프레시안> 기자는 왜 조선소 하청으로 취업했나

- 기자가 체험한 조선소 하청 노동
<1> 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2> "목숨 갉아먹는 유리 먼지, 여기가 지옥이다"
<3> 점심시간 1분만 어겨도 욕설에 삿대질, 경고까지
<4> "6미터 추락 반신불수, 책임자는 알 수 없어"

- 조선소, 한국사회의 축소판
<1> 발 헛디뎌 죽은 다음날, 회사가 한 말은?
<2> 노동자도 아닌, 사장도 아닌, 넌 누구냐?

 

서민진(가명·31) 씨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다. 올해로 9년 일했다. 결혼은 했다. 딸이 둘이다. 다음 달엔 셋째 딸이 태어난다. '아이들 먹여 살리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말을 늘 입에 붙이고 다녔다.

조선소 근처에서 태어난 서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래저래 사고도 많이 쳤다. 술 먹고 돌아다니며 싸움질도 많이 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서 씨를 군대에 보냈다.

2년이라는 시간동안 철이 들어서일까. 전역하고 집에 온 날, 자신의 손을 잡고 조선소로 향하는 아버지 손을 서 씨는 뿌리치지 못했다. 아버지는 조선소 하청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이 다니는 조선소 하청 업체 사장에게 굽실거리며 마련한 취업 자리를 뿌리치긴 어려웠다.

생각해보면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더는 부모님께 누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나이 23살 때였다.

기다렸으나 오지 않는 아버지

막상 일을 하려니 쉽지 않았다.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퇴근 후 실신하듯 잠들었다. 자명종에 일어날 시간을 맞춰 놓아도 번번이 늦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래도 지각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서 씨를 깨워줬다. 늘 통근버스를 타고 함께 출근했다.

그렇게 2년을 일했다. 일도 어느 정도 적응됐다. 그런 서 씨가 아버지는 뿌듯했나 보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소주 한잔 하자는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보다 일이 일찍 끝난 서 씨는 먼저 퇴근해, 집 근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와 가끔 가던 식당이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서 씨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잔업을 마치고 집에 오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회사 통근버스에서였다. 하지만 보상금은 고사하고 산재신청도 못했다. 일하던 중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심장마비와 작업환경과의 연관성을 밝혀야 하는데 그런 지식도, 여력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억울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회사를 다녀야 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딸아이를 하나 낳았다. 아이에겐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주기 싫었다. 아내와 상의 끝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경기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경기도에서는 공사판 막노동을 했다. 하루 일하면 7만5000원을 받았다. 2만5000원을 하루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 5만 원은 저금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만5000원으로 생활하는 건 만만치 않았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생각보다 많았다. 게다가 비가 오거나 몸이 아픈 날에는 일하러 가지 못했다.

명절 때,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내려가려 했지만 차비가 모자라 가지 못하기도 했다. 저녁식사 할 돈이 없어 굶기도 했다. 그렇게 8개월을 버텼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게 싫어 조그마한 제조업 공장에 취업했다. 나사조이는 단순 작업이었다.

하지만 100만 원 조금 넘게 받는 돈으론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았다. 고민 끝에 예전 다니던 조선소에 재취업했다. 그나마 조선소 일이 노동 단가가 높았다. 그 후 지금까지 서 씨는 이 곳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도돌이표 인생인 셈이다.

 

30대 중반이 일하기엔 돈이 생각만큼 벌리지 않는다?

기자가 조선소에 취업한 첫날, 현장반장은 "조선소에서 일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30대 중반 나이에 이런 일을 하기엔 힘이 부치고 돈도 생각만큼 벌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현장반장은 "20대의 경우야 이곳에서 버는 돈이 많을지 모르지만 가정을 꾸릴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며 "경력이 아무리 붙어도 임금이 쥐꼬리만큼 올라가니 버티기 힘들다"고 진지하게 조언해줬다. 실제 일을 가르쳐준 선임자를 제외하곤 모두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기자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이곳 조선소에서 일하는 경력 10년차 하청 노동자는 한 달 200만 원도 받지 못했다. 야근수당, 주말 수당을 다 합한 숫자다. 현장반장은 "여기 작업장에는 미처 이곳을 벗어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사람만 남아 있다"며 "잘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출처: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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