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1937년 부터 한국에서 최초로 도크에서 배를 만든 역사적인 곳이다. 지리적 한계로 도크를 늘리지는 못하지만 조합원들의 '대한민국 조선 1번지'라는 자긍심은 높다.
2011년 1월 12일, 74년의 역사를 가진 한진중공업은 노동자 290명에 대해 집단학살과 같은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오후 3시, 한진중공업 단결의 광장에 1천 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곳 영도조선소는 악랄한 자본과의 투쟁에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비타협적으로 싸워온 자랑스런 노동조합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정리해고 철회시켜 기어이 승리의 깃발을 움켜쥡시다”는 채길용 지회장의 피맺힌 외침이 울려 퍼졌다. 함마와 용접홀더를 잡던 1천여 개의 거센 팔뚝들이 하늘을 휘저으며 “투쟁”으로 야드를 뒤흔들었다.
1월 6일 새벽녘 홀로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는 김진숙 용접공은 “반드시 살아서 내려가겠습니다. 그게 열사정신계승입니다”며 촛불집회에 모인 노동자들에게 약속했다.
기록으로 본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역사
1937년 7월 10일, 기존에 있던 ‘서조조선철공소’를 기반으로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에 (주)朝鮮중공업이 설립되었다. ‘1946년 9월 23일 부산지구 철도노동자들을 선두로 파업을 선동하여 부산시내의 전 산업기관이 10여 일간 마비상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조선중공업도 예외되지 않아 이 파업열풍에 휩쓸리게 되었다(대한 조선공사 30년사에서 인용, 1963년 편찬)’ 는 기록으로 보아 잔혹한 일본제국주의 아래에서도 노동자 투쟁의 역사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1960년 4.19혁명으로 민주노조로 전환한 노동조합은 7월에 임금인상과 관련하여 파업을 결의하여 45%의 임금인상을 쟁취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쿠테타로 해산당한 노조는 1963년 노조설립이 허용되자 대한조선공사 노동조합이 다시 만들어 졌다.
대한조선공사가 민영화되면서 1,174명의 대량해고와 노동자들의 투쟁(1968년). ‘1969년 8월 1일부터 전면파업 돌입. 회사는 직장폐쇄를 때렸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노동자투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986년, 어용노조를 바꾸고 근로조건을 개선하자는 젊은 노동자들이 나타났다. 대의원선거에서 김진숙(25세), 이정식(26세)이 대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인간답게 살기위한 현장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명예실추와 상사명령불복종을 이유로 7월 14일 김진숙을 해고했다. 그 며칠뒤인 8월 8일에는 이정식 대의원과 박영제(28세) 조합원을 해고했다. 해고된 3인은 ‘조공노조 정상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골목길에서 회사 몰래 ‘조공 노동자 신문’을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배포하며 회사와 어용노조의 비리와 현장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출근할 때 ‘조공노동자신문’을 허리춤에 감추고 현장으로 가져와 주변 동료들에게 배포하는 ‘간 큰 노가다’들도 많았다.
‘간 큰 노가다’들의 승리 “개밥은 못먹는다”
식당도 없이 깡보리밥 도시락을 현장에서 공업용수에 말아먹던 시절. 해고된 3인이 유인물을 만들고,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어용노조를 제끼고 도시락 거부투쟁을 했다. 1986년 9월 8일부터 3일간 진행된 도시락 거부 투쟁은 수천 노동자들의 절대적인 호응을 얻었다. 회사는 사흘만에 ‘연말에 식당을 짓는다, 추석상여금 100%지급한다’는 대자보를 붙였다. 최초의 승리, 현장의 노동자들이 투쟁에 대한 확신감을 얻었다. ‘쥐가 많아서 일못하겠다’며 노동자들은 떼를 지어 온야드를 돌며 쥐잡으러 다녔다. 조선소 노동자들은 그렇게 스스로의 힘을 키워갔다.
1987년 7월 25일, 식당벽에 ‘조공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이라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관리자들이 이를 떼내자, 노동자들의 항의와 규탄이 타오르면서 4천여 노동자들은 일제히 식사를 거부하고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정문앞의 4차선 도로에 중장비를 동원하여 H빔을 쌓고 “인갑답게 살고 싶다”를 외쳤다. 영도의 주 간선도로였던 4차선이 봉쇄되자 20만명이 살던 영도의 교통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수탈과 권력의 탄압에 고통받던 한맺힌 설움을 쏟아냈다.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밤새 농성을 벌이다 경찰이 건물 내로 쏟아붓는 최루탄을 흠뻑 들이마셨다.
8월 1일 민주노조 건설추진위를 결성한 노동자들은 어용집행부를 불신임했다. 9월 15일, 조합원들의 직접선거로 꿈에도 그리던 민주노조 집행부를 탄생시켰다. 저임금에 시달려온 노동자들은 18%의 임금인상을 쟁취하고 개인이 지불하던 식비를 폐지시켰다.
|
|
최루탄 흠뻑 마시며 전노협 지키다
1989년 10월 14일, 부산노련이 결성되고 1990년 2월 22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약칭:전노협. 위원장 단병호)가 만들어졌다.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위원장 박창수)은 그 중심에 우뚝 서 있었다.
1991년 2월, 대우조선노조 결사대 54명이 108m 골리앗 크레인에 오르고 6천여 노동자들은 땅에서 투쟁하는 이른바 ‘천지작전’이 벌어졌다. 박창수 위원장은 대우조선 파업연대를 위한 회의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급습으로 ‘제3자 개입금지와 집시법위반’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경찰과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요원들은 “전노협을 탈퇴하면 풀어준다”고 꼬드겼다. 박창수 위원장은 “내가 전노협이다”며 그들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안양교도소에서 부상을 입은 박창수 위원장은 치료받던 안양병원에서 5월 6일, 의문의 죽음 당한 채로 발견되었다. 노동자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부산, 서울, 안양을 오가며 55일동안 투쟁하고 6월 29일 박창수 위원장을 솥발산에 묻었다.
한진중공업 단체협약에는 어용시절 만들어진 ‘일방 중재’ 조항이 있었다. 노사 어느 한 쪽이라도 노동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하면 쟁의행위를 할 수 없는 조항이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회사는 파업을 불법화시키기 위해 해마다 ‘일방중재’를 신청했다.
1994년 6월 27일, 조합원 총회가 열리고 파업찬반투표가 93.4%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노조는 곧바로 파업을 선포하고 조합원들은 이끌고 국내최초로 건조되던 43m 높이의 멤브레인형 LNG선으로 올라갔다. 조합원 1천 여명은 선체에 오르는 모든 시설을 철거하고 LNG농성파업을 벌였다.
LNG선 점거파업과 김주익 열사
경찰은 헬리콥터와 수천명의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강제진압하려했으나, 쇠파이프와, 각종유기용제로 무장한 노동자들에게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10일이 지나자 사장이 직접 선체로 올라왔고 11일째 협상은 마무리 되었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 2002년 임금인상과 고용안정, 현안문제를 풀기위해 크레인에 올랐습니다. 직기장 및 관리자들의 통제를 벗어나 노동자의 길을 갑시다”는 편지를 남긴 김주익 지회장은 2003년 6월 11일 밤 11시, 홀로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직기장과 사무관리직을 동원한 회사의 현장통제는 조합원들을 철저히 옥죄고 있었다. 구조조정과 2002년 임금협상이 해를 넘겼다.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 오르자 회사와 경찰은 온 공장 담벼락과 정문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금속노조의 현장 출입을 철저히 막았다.
|
|
▲ 2007년 9월1일 필리핀 수빅 한진중공업 공장에서 회사 관계자들이 컨테이너 블럭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세지자 노사협상이 이루어지고, ‘고용안정, 임금 인상, 손배가압류철회, 간부징계 최소화’라는 의견이 접근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회사는 다음 날 약속을 뒤집었다. 조합원들은 “합의가 찌짐이가 와 디비노” 분노했다. 회사는 전조합원을 대상으로 △파업안하고 집에서 쉬면 명휴수당 70%지급 △파업하면 고소고발, 손배가압류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파업대오를 무력화 시켰다.
10월 17일 아침, 김주익 지회장은 “이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나의 무덤은 크레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는 글을 남기고 85호크레인 위에서 목을 매 자결했다. 흩어졌던 노동자들이 크레인 아래로 다시 모였다. 수십개의 천막이 쳐지고, 1천여 노동자들은 견결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한달동안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곽재규 조합원은 투쟁과정에 스스로 11m 도크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11월 14일, 노사는 △일방중재 철회 등 요조 단협요구안 수용 △손배가압류 철회 △김진숙을 제외한 해고자 17명 전원 복직 △임금인상 등에 합의하고 두 열사를 솥발산에 고이 묻어 드렸다.
그리고 2009년 12월, 그동안 침묵해오던 회사가 다시 칼을 뺐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합원들이 흩어지지 않는다. 조합원들은 똘똘 뭉쳐 2010년 한해 내내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부분파업과 전면 파업을 계속했다. 수개월동안 50만원도 안 되는 봉급으로 생활을 버텨가고 있다.
|
|
[투고] 74년간 살아 움직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역사
부산양산=유장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