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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다시 전태일인가](4) 전태일이 우리에게 남긴 것


글쓴이: 조수원열사정신계승사업회

등록일: 2010-11-06 21:57
조회수: 900


전태일.jpg (142.1 KB)
 
ㆍ한국 사회 흐름을 바꾼 ‘죽음’… 그러나 끝나지 않은 ‘투쟁’

전태일은 한 알의 밀알이었다. 그가 죽음으로써 노동운동이 씨앗을 틔우기 시작했다. <전태일 평전>의 저자 고 조영래 변호사는 1970년 11월13일 전태일 분신 이후의 변화를 이렇게 기록했다. “사람들은 이제껏 아무도 발음하려고 하지 않던 ‘노동자’니 ‘노동운동’이니 하는 어휘들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당장 노조결성 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노동조건 개선 요구”와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외침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전태일의 죽음 2주 뒤, 청계천 재단사들은 청계피복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혹사당하던 노동자들이 자신이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씨도 노조와 함께했다. 이후 청계피복노조는 평화시장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유신정권의 노동탄압에 맞서 끈질기게 투쟁하면서 70년대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전태일의 죽음은 노동운동의 기폭제인 동시에 한국 사회 흐름을 바꾸는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73년 신진자동차(현 GM대우), 원풍모방, 아세아자동차, 동일방직 노조도 잇따라 결성됐다. 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과 경찰의 노조 조합원 ‘블랙리스트’ 관리 등 극심한 노조 탄압 속에서도 70년대에만 2500여개의 노조가 생겨났다. 79년 노조 조합원 수는 100만7000여명까지 늘어났다.

전태일의 죽음은 ‘대학생 친구’들에게도 깊은 충격을 던졌다. 한자로 가득한 근로기준법과 씨름하면서 “나에게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었다면…”이라고 탄식한 전태일의 삶과 죽음은 대학생들의 시선을 노동현장으로 향하게 했다.

대학마다 전태일 추도식과 항의집회를 열었다. 군사독재 반대와 농민문제에 주로 천착하던 학생들은 노동문제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태일이랑 동갑내기예요. 이 친구는 그때 벌써 우리사회 구조적 모순의 본질이 노동문제에 집약돼 있다는 것을 꿰뚫고 있었는데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태일이의 친구가 됐지만 그 이후 40년을 항상 곁에서 함께 걷고 있는 느낌입니다.” 전태일 사건을 계기로 삶의 항로를 바꾼 이광택 국민대 법학과 교수의 말이다.

70년 당시 서울대 운동권 학생이던 이 교수는 전태일의 분신 이후 노동자 교육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노동법을 전공하게 됐다. 많은 대학생들이 그와 마찬가지로 노동야학 활동 등 적극적으로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다. 이 교수는 “태일이로 인해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이 접점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화 요구와 맞물려 종교인, 지식인 등 재야 민주세력들의 연대 활동도 활발해졌다.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노동정책에 항의하며 노동문제를 ‘정치문제화’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러한 연대는 유신체제에 저항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정치투쟁과 결합되면서 한국 사회 진보진영의 큰 축을 이루게 됐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노동운동은 또 한 번 침체기를 맞았다. ‘노동조합 정화조치’와 노동관계법 개정으로 인해 70년대 전태일이라는 씨앗에서 자란 민주노조운동은 급속히 위축됐다. 대학생 위장취업자에 대한 사법조치도 잇따랐다. 이런 과정에서도 노동계는 84년 최초의 동맹파업인 서울 구로공단 파업을 통해 하나로 결집하는 단초를 마련했다.

특히 87년 6·29 선언 이후 노동자들은 다양한 요구조건을 걸고 노동조합 결성과 투쟁에 나섰다. 그해 6월29일부터 10월31일까지 발생한 노동쟁의만 총 3311건에 이르렀다.

결국 민주노조운동은 87년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95년 11월 민주노총이 출범함으로써 결실을 맺고 한국노총과 함께 양대노총 시대를 맞게 됐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권력과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자들의 실질적 이익을 대변하지 못했던 ‘노조 협조주의적 노동운동’이 전태일 사건을 계기로 ‘민주노조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진정한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됐다”며 “전태일이 제기한 문제는 전방위적, 전사회적이었으며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 편에 서겠다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제도적인 메아리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오고 있다. 40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의 외침이 무색하게, 여전히 해마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사업장이 수십만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노동자 보호법규가 강화되고 일부 발전한 측면도 있지만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는 실질적으로는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더더욱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고용노동부의 ‘2009년 노동백서’에 따르면 2008년 비정규직 다수 고용 사업장 4255곳 중 88%인 3746곳이 근로기준법 등 각종 노동관계 법령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 위반 건수는 1만5093건으로 위반 업체당 평균 4건에 달했다.

‘전태일 40주기 대토론회’에 참석한 김선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가장 핵심적 조항인 해고제한 규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노동자의 법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태일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경향신문에서 발췌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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