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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경 열사는 1969년 6월24일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다. 1971년 부산으로 이사를 와 1982년 부산 아미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인 1982년, 그 어린 나이에 보세공장에서 노동자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억척스러운 그녀의 삶은 공장생활을 하면서도 1985년 2월, 야간제였던 동주여중을 졸업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홀어머니는 완구공장에 다녔고 네 살 터울인 오빠 역시 노동자로 생활했고 여동생 둘이 있었다. 스물세 해, 열사의 삶은 가난했지만 비루하지 않았고 꿋꿋하게 공부하고 또 일하는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열사는 지역 노동자들의 독서모임인 ‘도서원 광장’에 나가면서 노동자 의식에 눈을 떴다. 도서원 광장은 1989년 노동자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졌고 감천2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열사는 1991년 도서원 광장에 나가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노동자 의식에 눈을 떴다. 열사의 일기장 갈피마다에는 광장에 대한 애착이 담겨 있다. “오랜 세월 애타게 갈망해오던 그런 사람들이 여기 있었다. 바로 이곳 ‘광장’에. 그들과 언제까지나 함께하고 싶다.”(1991년 5월7일 일기장)
열사가 자라서 노동자가 됐던 부산은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신발공장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에는 국제상사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치열한 투쟁을 전개했던 사례가 있다. 이처럼 부산은 여러 타지에서 이농한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신발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도시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부터 신발업계의 무더기 도산 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신발업체들은 “30분 더 일하기 운동”, “불황극복 50일 작전”, “3무(무불량, 무이탈, 무미달) 운동”, “무임금 1시간 더 일하기 운동” 등 착취강화 운동을 벌였다.
권미경 열사가 근무하던 (주)대봉 역시 경영 상황이 악화되자 노동강도를 강화시키고 비인간적인 노동통제로 노동자들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주)대봉은 부산 사하구 신평동에 위치한 신발 제조업체로서 전체 사원 3500여 명 규모의 수출업체였다. 이 회사는 내수와 수출을 겸하고 있었다. 사측은 1991년 11월부터 전체 사원으로 하여금 “원가절감, 결근방지”라는 깃을 강제적으로 달게 했다. 어용노조의 협조 하에 추진된 일이었다. 12월 들어서면서부터는 노동강도가 더욱 강화되어 강제 연장근로 등을 시키고 작업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반장, 계장 등 관리직 사원들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정신교육과 함께 강제적인 잔업을 시키기도 했다. 훈시를 듣느라고 저녁 식사도 못한 채 잔업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또한 (주)대봉에서는 여느 신발공장과 마찬가지로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했다. 관리자들은 엄연히 있는 노동자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권공순”, “박공돌”로 불렀다. 권미경 열사의 유서에 등장하는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1991년 12월6일 오전, 권미경 열사가 근무하는 1계 3조로 바이어가 품질검사를 나왔다. 이때 야간학교 학생인 동료 노동자 최미숙이 불량을 냈고 바이어가 이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바이어는 동행한 관리직 사원을 질책했고 바이어가 사라지자 이후 조장과 반장이 학생 노동자를 야단쳤다. 이 광경을 목격한 권미경 열사는 같은 라인의 동료에게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느냐? 이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냐”고 말하며 울먹였다고 한다.
권미경 열사는 12월6일 오후 4시8분경 회사 옥상 난간에서 30미터 아래로 몸을 던졌다. 열사는 즉시 차에 실려 고신의료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유명을 달리한 후였다. 열사는 유서가 사라질 것에 대비해 왼팔에 유서를 새겨놓고 몸을 던졌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 깊은 곳에 묻어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권미경 열사의 죽음이 알려진 직후 부산지역노동조합총연합 등 부산지역 11개 단체가 모여 “고무노동자 고 권미경 양 사인 규명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책위는 권미경 열사의 죽음에 대해 “경제위기의 원인을 노동자에게 전가시키기 위하여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30분 일 더하기 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주)대봉의 원가절감운동의 전개 속에서 목표량 달성을 강요하는 회사 측의 노동강도 강화정책에 맞서 죽음으로 저항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후 대책위는 규탄집회와 대시민 선전전 등을 전개했다. 또 장례가 끝날 때까지 시신 탈취에 대비해 영안실 주변에 사수대를 배치했다. 당시 전국노동조합협의회는 “권미경 열사의 영전에 눈물 젖은 노동해방의 약속을 바칩니다”라는 제하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12월22일 장례식이 부산노동자장으로 치러졌고 양산 솥발산 열사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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