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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진중 해고 전기원씨 추석맞이
지난 6일 부산의 하늘은 유난히 쨍한 푸른빛이었다.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하늘에선 푸른색 틈으로 삐죽삐죽 솟아오른 크레인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여덟 달 넘게 머물고 있는 85호 크레인도 있었다.
영도조선소 맞은편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자 부산의 별미인 돼지국밥을 파는 허름한 식당들이 나타났다. 그중 간판도 없는 한 상가에서 몇몇 장정들은 고무 대야에 한가득 담긴 채소를 손질하느라 분주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들이었다. 지난 6월27일 법원의 행정대집행으로 공장 밖으로 끌려나온 해고자들은 갈 곳이 없어 빈 식당에 세를 얻어 거처를 마련했다. ‘정리해고 철회 투쟁위원회(정투위) 사무실’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지만 이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다.
“좀 정신이 없지요.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느라 좀 어수선합니다.”
해고노동자 전기원씨(43)와 부인 김경임씨(38)가 취재진을 맞았다. 서울과 사무실을 오가며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벌이고 있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김씨가 6살 난 딸 유주와 함께 사무실을 찾은 것이다.
전씨는 1997년 한진중공업에 입사했다. 맡은 일은 조립이 끝난 배를 선주와 감독관이 보는 앞에서 시운전하는 것이었다. 이제 막 태어난 배에 첫 호흡과 움직임을 불어넣는 일. 그가 언제 다시 배에 올라 시동을 걸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집에는 몇 달에 한 번씩 갑니다. 지난해 12월 회사가 희망퇴직 대상 400명 명단을 발표한 이후 파업에 들어가 그 후로 지금까지 9개월 동안 3번 집에 들어갔어요. 아버지 제사 때문에 한 번, 몸이 아파서 한 번, 한진중공업 청문회와 상경투쟁이 끝나고 한 번….”
전씨는 이번 추석도 조선소 앞 85호 크레인 밑에서 보낼 생각이다. 김진숙 위원이 올라가 있는 크레인 밑을 비워둘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가 홀로 명절을 준비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1월6일 김진숙 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은 설에도 많은 해고자들이 크레인 밑을 지켰고 전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남편 없는 추석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다. 김씨는 전날 자갈치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가 부쩍 오른 물가에 놀랐다.
“회사에 다닐 땐 상여금이 있어서 그걸로 차례를 지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빚을 내 준비해야 할 입장이어서 걱정되네요. 추석 안에 끝나겠지 하는 기대가 조금 있었는데, 이렇게 자꾸 기간이 길어지면 이대로 잊혀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고….”
4개월 전부터 실업급여가 나오지만 한 달에 87만원 수준이다.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김씨는 집에서 전선을 연결하는 부업을 한다. 아침에 딸 유주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시작해 새벽 3시까지 꼬박 일한다. 그렇게 해 버는 돈은 한 달에 많으면 18만원 정도. 그래도 전씨가 사무실에서 식사를 해결하면서 식비가 많이 줄었다. 해고자들은 당번을 정해 세 끼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김씨는 “정말 절약하며 사는데, 이전에 이렇게 아꼈으면 벌써 부자가 됐을 것 같다”고 했다.
해고자 가운데 전씨를 포함한 20여명은 아직도 김해에 있는 한진중공업 사원아파트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언제 쫓겨나갈지 모르는 가시방석이다. “회사에서 퇴거통지서를 보내오고 아파트 관리실을 통해 압박을 가하지만 버티는 거죠. 보증금이 340만원인데 이 돈으로 갈 곳도 없고요.”
1999년 결혼한 이들은 7년 만에 어렵게 딸 유주를 얻었다. 그런 유주가 지난 8월 서울에서 한 달 동안 상경투쟁을 끝내고 집에 쉬러 온 아빠를 낯설어했다. 김씨는 “떨어져 지낸 지 7개월이 되어가면서 남편 없이 생활하는 데 익숙해질까봐 두렵다. 딸이 ‘우리 아빠는 매일 안 들어와’라고 할 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음식이 익고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위해 모여들었다. 회사의 ‘교육’을 마치고 사무실을 찾은 비해고자들도 섞여 있었다. 일부는 사무실에서 출퇴근을 하기도 한다. 해고자들과 김진숙 위원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날 메뉴는 카레와 계란국, 무생채였다. 남자들이 준비한 식사라 엉성할 것 같았지만 맛이 좋았다. 김씨는 “남편이 여기 밥맛에 길들여져 집 밥이 맛없다고 할까봐 걱정된다”며 웃었다.
이들의 한가위 소원은 무엇일까. “해고자들이 빨리 복직되고 김진숙 위원과 크레인에 올라간 노동자 4명이 무사히 내려오는 거죠.”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답이었다.
<이 기사는 경향신문에서 발췌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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