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업수당이라도 챙겨야 설 쇠죠" 우울한 자화상
노컷뉴스 | 기사입력 2009.01.25 07:03
20대 여성, 부산지역 인기기사
[CBS사회부 조은정 기자]
경기불황에 갑작스레 직장을 잃은 이들에게도 설날은 찾아왔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잔인하다.
고용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경비'가 없어, '면목'이 없어 고향을 찾지 못하는 실업자들은 고향을 애써 가슴에 묻은 채 어느 때보다 쓸쓸한 명절을 나고 있다.
설을 앞두고 찾아간 서울의 각 고용지원센터에는 실업 수당을 받으려는 실업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 하루 아침에 실업자 신세 전락…하루 평균 1400여명 몰려
이곳을 찾은 이들 대부분은 작년 연말에 1년 단위, 적게는 9개월 단위의 고용계약이 만료되면서 실업신세가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서울 관악구 고용지원센터에는 이번 달 들어 하루 평균 1,400여명의 실직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전달에 비해 5백여 명이나 늘어났다.
관악구 고용지원센터 주평식 소장은 "지난해 말에 해고된 계약직들이 많아 상담자들이 늘고 있다"면서 "특히 설날을 앞두고 실업수당을 찾으러 오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 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실업급여 신청자는 9만3000명으로 전년도 같은 달과 비교해 83%나 급증해 5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실업급여 지급액도 577억원이 늘어난 2487억원을 기록했다.
경남 대구가 고향인 이원구(61. 가명)씨는 지난해 12월 26일자로 월 70만원 받던 관악구 공공근로의 9개월 계약이 만료되자 생계가 막막하다. 당장 실업수당을 못 받으면 명절에도 끼니를 걱정해야할 정도다.
이씨는 "내일 모레가 설인데 골방에서 굶어야할 판"이라면서 "하도 막막해 사정이라도 해보려고 고용지원센터를 찾았다"고 한탄한다.
월세 20만원 골방에서 홀로 설을 보내야 하는 이씨가 가장 눈에 밟히는 것은 바로 열 살 배기 손주다.
이씨는 "또래의 지나가는 아이들 뒷모습만 봐도 손주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면서 "새뱃돈 넉넉하게 주면서 마음껏 안아 보는 게 소원"이라고 눈시울을 붉힌다.
◈ "새뱃돈 넉넉하게 주면서 손주 마음껏 안아봤으면..."
이씨처럼 공공근로 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12월 실직한 김동호(54 가명)씨.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진지 오래라 외로움에 이미 익숙하지만 이맘때 명절이 닥쳐오면 유독 혼자라는 사실을 견디기가 힘들다.
97년 외환위기 때 잘나가던 회사가 갑작스럽게 부도를 맞으면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청각장애와 지체장애 3급을 판정 받아 공공근로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골방에 종일 있으면 하루에 말 한마디 할까, 명절에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지내야 한다는 게 죽을 만큼 외로워....."
김씨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실직보다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혼자 된 외로움이다.
경기 불황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이들 실직자들에게 고향에서 가족, 친지와 함께하는 떠들석한 설은 다른 나라 이야기.
지루한 불황의 터널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몇십만원 실업수당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실업자들의 설 나기는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aori@cbs.co.kr
[관련기사]
● '떡국대신 라면' 88만원 세대들의 힘겨운 명절나기
● '실업 쓰나미' 엄습에 실업급여 '구멍'날라
● 경제난 장기화 전망…MB정부 단기일자리 '무용지물'
● '고용 한파를 뚫어라'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 www.nocutnews.co.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