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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숙농성 일기 사흘째


글쓴이: 부지매

등록일: 2006-04-01 06:59
조회수: 1495 / 추천수: 9
 
노숙농성 일기 사흘째
(2006. 3. 31.)



(▲ 부지매 조합원이 칼을 쓴 채 허남식시장의 조속한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티.에이치.이.시.오.에프.에프.이.이.비.이.에이.엔.....
멋드러진 테라스가 딸린 커피 빈...
저기 앉아 시럽 듬뿍 담긴 따뜻한 커피 한잔 먹으면 참 좋겠다...
하늘을 지붕 삼아 침낭하나 깔고 눕긴 했지만,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불 꺼진 커피 전문점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커피 빈.
혼자서 몇 번인가 간판에 붙은 영어 스펠링을 입안에서 굴려 본다.
커피 생각이 간절해졌다.

며칠전 커피 빈 직원이 우리에게 볼 멘 소리로 말했던 게 불현듯 생각이 났다.
저희도 먹고 살아야 될 것 아니예요... 길 좀 틔워주세요!
젠장... 내가 해야 할 소리다.
저기 저 커피숖 통유리 한장을 사이에 두고 저들과 우리는 서로가 너무나 다른 세상을 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조금 이른 감이 있는 반팔 T셔츠를 입고 한잔에 5000원 돈이 넘는 커피를 마시는 저들... 저들에 눈에는 우리가 어떻게 비춰질까...
겹겹이 옷을 주워 입고도 모자라 침낭까지 뒤집어쓰고 앉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한번씩 곁눈질을 하다가 이내 책을 보거나, 다시 자기들만의 대화에 몰두하는 그들을 보면서 문득 쓸쓸해졌다. 적어도 왜라는 물음표하나는 던져 주길 바랬다.

잠이란 참 대단한 것 같다. 이렇게 추운 곳에서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늦은 새벽까지 이런 저런 생각들과 뼈까지 저리게 하는 추위로 뒤척거렸던 것 같은데 어느새 잠이 들었었나 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빠른 발자국소리에 겨우 의식만 찾아 한참을 그대로 누워있었다.
온몸이 굳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한겨울 언 땅이 봄을 맞아 스르르 녹듯 팔 다리가 저려오더니 조금씩 감각이 돌아왔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차올랐지만, 겨우겨우 삼켜 내렸다.
귀신같은 몰골로 자리에 일어나 앉으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아마 사람들이 동물원 원숭이 마냥 대놓고 쳐다본대도 별로 할 말은 없을 것 같았다.ㅋㅋ
그렇게라도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랬다. 너무나 간절히...

밤사이 너무나 고마웠던 침낭들을 정리하고 있자니 뭔가가 옆에서 툭하고 치고 지나갔다.
놀라 쳐다보니 말랑말랑한 쑥인절미 한통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는 잽싸게 걸어가시는, 아니 뛴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를 걸음으로 한 할머니의 굽은 등이 보였다.
그 떡은 이미 내게 떡이 아니었다. 커다란 금덩이 마냥, 세상에 너무나 값진 보물인 듯 여겨졌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시는 할머니 등에 대고 소리쳤다. 잘 먹겠다고...
아침이라 아직 터지지 않은 목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에 목이 메였던 것인지...
목소리가 가뭄의 땅처럼 저~억 갈라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 내가 만난 사람들은 어젯밤의 추위로 언 나의 몸을 녹여주고도 넘쳤다.
춥다고 뽑아주시는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가 그보다 몇 배가 더 비싼 커피 빈의 커피도 부럽지 않았고, 추울텐데 하며 안타까워하는 그 말 한마디가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기도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순간, 사람들의 무관심에 상처받던 어제의 나의 얕은 생각들이 부끄러워졌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그래서 그 희망들도 살아가는 사회라는 것을 알겠다.
우리가 고마운 분들에게서 그 희망을 보았듯, 우리 또한 그 희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우리의 싸움은 정당하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꼭 승리 할 것이다.

- 황이라의 일기


(▲ 전국해고자복직위원회(전해투)가 참여하여 부지매 중식집회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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