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26일 전북 완주군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트럭 생산라인에서 김효찬씨가 일하고 있다 |
|
 |
지난 26일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김효찬씨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비정규직 3대 대물림, 싸워서라도 막아야죠”
청년 전태일은 1970년 제 몸을 불살라 청계피복공장의 노동현실을 고발했다. 그는 코피가 터져도 각성제를 먹어가며 잠과 피로를 쫓아야 하는 10대 여공들의 모습을 보고 분노했다. 근로기준법은 존재했지만 허울뿐이었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열고 분신했다. 40년 세월이 흘렀지만 노동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밥먹듯 야근하며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2010년의 전태일’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김효찬씨(34)는 전북 완주에 있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하청업체 트럭부에서 일한다. 고교 졸업 후 비정규직으로 일했고, 해고도 한 번 당해봤다. 그 역시 평범한 노동자였다. 하지만 이젠 출근길과 점심시간에 비정규직 동료들과 차별에 대해,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 23일에는 상경해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의 농성 현장을 찾았다.
95년 완주의 삼례공업고 기계과를 졸업한 김씨는 KT에서 전화선을 연결하고 복구해주는 일을 했다. 1년6개월 뒤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회사는 “내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통보했다. 그때만 해도 ‘비정규직’이란 개념조차 잘 몰랐다. 해고 통보를 쉽게 받아들인 까닭이다. “사회가 이렇구나.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직장을 찾아 나섰다. 2000년 친구를 따라 찾은 고용지원센터에서 구직신청서를 썼다. 2001년 2월 하청업체 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비정규직 트럭부 조립공으로 일하게 됐다. 이곳에서만 지금까지 10년째 일하고 있다. 95년 20만여㎡의 터에 세워진 전주공장은 트럭·버스·중장비 엔진을 생산하는 곳이다. 현재 14개 하청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노동자 4500명 가운데 1000여명이 비정규직이다. 이 중 360여명이 비정규직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이다.
‘묵묵히, 열심히 일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해서 조회에 늦을 것 같다’는 동료에게 회사는 “딴 데 가느라 늦는 것 아니냐. 약봉투나 진단서 가져와보라”고 했다. 무거운 차체와 부품을 다루는 작업 특성상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안전화를 신어야 하지만, 새로 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퇴직자의 낡은 안전화를 물려받아 신어야 했다. “기본적인 인간 대우도 안해주는구나” 싶었다. 해고되지 않으려면 주말에도 특근을 해야 했다. 경조사도 제대로 챙기기 힘들었다. 친척 결혼식이 있어 점심시간에 짬을 내 다녀오려 해도 회사 관리자는 좀체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회사는 ‘정규직 노조만으로도 버거운데 비정규직마저 노조가 있으면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만남을 경계했다. ‘어젯밤 누구누구가 같이 술을 먹었다’는 것조차 다음날이면 모든 사람들이 다 알 정도였다. 일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작은 움직임조차 통제했다. 실제 정규직 전환은 극히 드물었다.
2002년 김효찬씨는 작은 모임을 시작했다. 거창하게 비정규직 문제를 논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 문제’를 동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때마침 친한 회사 동료들이 자주 낚시를 간다는 사실을 알고 낚시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사실 낚시 미끼인 지렁이조차 못 만지는데 말이다. 김씨를 비롯한 8명은 전주시외버스터미널 근처 다방에서 ‘참진회’를 조직했다. ‘참 진(眞)’자의 음과 뜻을 그대로 썼는데, 정말 참되고 진실된 모임을 만들자는 의미였다. 회칙도 만들고 회장, 총무도 뽑았다. 김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낚시에 서툴지만 총무를 맡고 있다. 참진회는 노조를 생각하고 만든 모임은 아니었다. 아침 6시면 일어나 통근버스 타고 출근했다가 귀가하면 오후 9시이고, 토요일에도 특근을 하는 그에게 노조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더욱이 그는 노조가 뭔지도 잘 몰랐다.
2004년 그는 전주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김형우씨(48·현 금속노조 부위원장)를 만났다. 김제 출신으로 농민회와 노조 활동을 한 김형우씨는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에 문제의식을 갖고 비정규직 노조 문제를 공론화할 동료를 비밀리에 찾아 나섰다.
김형우씨의 눈에 김효찬씨가 들어왔다. 두 김씨를 포함해 하청업체 비정규직 10여명은 전주의 한 교회에서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교회에서 모였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각자 근무하는 업체의 노무 현황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노조는 왜 필요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김효찬씨는 “가슴에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더라”고 했다.
2004년 9월 비정규직 노조의 모태가 되는 ‘하청노동자연대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250여명이 가입했다. 노조를 만들면 회사가 업체를 폐업시키고 고용승계를 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전주공장뿐 아니라 전국 다른 사업장에서도 비정규직 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5년 2월 마침내 금속노조 전북지부 현자(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를 만들었다. 당시 조합원이 400여명. 1·2기 지회장은 김형우씨가, 사무장은 김효찬씨가 맡았다.
전태일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이때였다. 김형우씨는 그에게 조영래 변호사(작고)가 쓴 <전태일 평전>을 건넸다. 그는 ‘이런 책도 있구나.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라고 신기해하며 책을 두 번 읽어내려갔다. “노조 같은 거 하지 마라. 꼭 해야겠다면 중간만 하라.” 당시 전주백화점에서 비정규직 미화원으로 일하던 어머니는 아들을 뜯어말렸다.
2005년 8월 김효찬씨는 관리자가 노조 간부를 폭행한 데 항의하다 점거농성자로 몰렸다. 사측 관계자로만 구성된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해고됐다. 해고자는 김씨를 포함해 4명이었다. 정문 앞에서 복직 농성을 하던 그는 “마음이 약해져 복직투쟁에 적극 나서지 않게 되더라”고 회상했다. 금속노조에서 신분보장기금을 받고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지만 아내와 아들 태영이, 딸 수빈이 네 식구가 생활하기엔 부족했다. 그때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 250여명이 매달 1만원씩 갹출해 해고자들에게 나눠줬다. 눈물이 났다. 김씨는 동료 조합원들이 1만원씩 지출했다는 납입서를 집에 보관해두고 지금도 마음이 나약해질 때마다 꺼내 본다.
2007년 4월 복직했다. 그러나 올해 8월 김씨의 어머니는 10년을 넘게 일하던 전주백화점에서 해고됐다. 다른 유통업체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고용승계가 되지 않았다. 아들의 노조활동을 말리던 어머니는 이제 왜 아들이 그토록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지 몸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노조에 가입했다.
김씨는 아홉살 된 아들 태영이에게 이따금 꿈을 물어본다. 태영이는 몇 번 물어도 만화 주인공처럼 멋진 카레이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효찬씨는 ‘카레이서도 결국 비정규직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내 아들뿐 아니라 다음 세대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일할지도 모른다. 3대가 비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며 “내 자식들이 정규직이 되고, 다른 아이들도 정규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아버지 세대가 싸워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결국은 싸움에서 진다 하더라도, 불합리한 일을 겪을 때 대응조차 할 수 없는 비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싸운다고 했다.
그는 이따금씩 전태일을 떠올린다.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모두 전태일이어야 합니다. 문제는 극한의 상황에 닥쳐봐야 뒤늦게 전태일이 된다는 겁니다. 비정규직이 뭉치는 게 어려운 이유이지요.”
기자와 만난 지난 26일, 그는 점심도 거르고 25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본관 앞으로 향했다. 등에 ‘모든 사내 하청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는 문구가 적힌 천을 꿰매 달았다.
매주 월·수요일에는 출근투쟁을, 화·목요일에는 점심투쟁을 한다. 저녁에는 노무사, 변호사들과 만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불합리한 처우에 대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40년 뒤 그의 아들과 딸은 조금 달라진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이 기사는 경향신문에서 발췌한 자료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