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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명의 노동운동가들이 분신하거나 투신, 또는 노동운동 현장에 있다가 사망해 함께 묻혀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경남 양산 솥발산공원묘지다. 지난 여름 화물연대 파업 당시 사망한 최복남 열사를 비롯해, 올해 1월 분신사망한 배달호 열사가 모두 이 곳에 잠들어 있다.
이 곳은 영남권의 노동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버렸다. 경남과 부산·울산권에서 사망하는 노동운동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노동운동가의 성지처럼 되어버렸다.
배달호열사정신계승사업회(회장 김창근) 회원 50여명이 20일 오전 솥발산에 묻혀있는 노동열사의 묘소를 찾아 성묘했다. 고 배달호 열사는 올해 1월 두산중의 노동자광장에서 손배가압류와 해고자 문제 해결 등을 바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사업회는 금속노조 두산중지회 조합원을 비롯해, 전국에서 참여해 결성되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사업 중에 하나가 배달호 열사의 묘소뿐만 아니라 솥발산에 있는 노동열사들의 묘소에 성묘를 하는 것이다.
이들은 배달호 열사만 찾지 않고, 공동묘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른 열사의 묘소도 찾아 꽃을 놓고 묵념했다. 유족들이 이미 다녀간 묘소도 있었지만, 벌초조차 되지 않은 묘소도 있었다. 회원들은 벌초도 하고, 술잔을 따라 놓으면서 그들이 남긴 정신을 이어받고자 했다.
'열사'는 "민족민주운동 과정에서, 민중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과정에서 개인의 문제로 비관하여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 동료와 조직, 나아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분신·투신·할복 등으로 산화한 사람"을 통칭해서 부른다. 이 곳에 묻혀있는 노동운동가들은 모두 '열사'인 것이다.
"돌아가신 지 얼마 안됐는데...마음 가다듬는 계기로 삼아"
이날 솥발산 성묘에는 배달호열사정신계승사업회 회장인 금속노조 김창근 위원장도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 수배 신분이라 성묘만 마치고 일찍 자리를 떴다.
김 위원장은 “열사는 유언에서 '더러운 세상, 악랄한 두산'이라 했는데, 3월 12일 두산과 합의를 본 내용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 “개인 손배가압류는 풀렸는지 몰라도 조합비 가압류 등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게 많다. 노동자 스스로 힘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라 말했다.
박방주 금속노조 두산중지회장은 “얼마 안됐는데,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져 놀랍다. 열사의 뜻을 기려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강대균 차기 지회장은 “돌아가신 지 8개월이 지났는데 그동안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어야겠다”면서, “열사의 유언처럼 더딜지는 모르지만 현장 조직을 복원할 것이며, 열사께서 늘 곁에서 꾸짖는다는 생각을 갖고 일하겠다”고 말했다.
고 배달호 열사의 부인 황길영씨는 “모든 분들께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아직도 열정을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맙고, 해고자들도 빨리 복직되기를 빌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창원을지구당 이재구 부위원장은 “노동운동은 멀리 내다보고 조직적으로, 사상적으로 활동해야 할 것”이라 격려했다.
권미경-서영호 영혼결혼 하기도, 최복남 열사는 곧 비석 설치
이 곳에 묻혀 있는 노동열사들은 갖가지 사연을 갖고 있다. 자기를 버린 사람들이다. 결혼도 못한 채 죽자 살아남은 사람들이 영혼결혼을 시켜준 열사들도 있다. 바로 권미경 열사와 서영호 열사로, 93년의 일이다.
열사의 무덤 뒤에는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현수막도 내걸려 있다.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노동운동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 여름 화물연대 운송거부 당시 사망한 최복남 열사의 무덤도 있다. 맨 마지막으로 이 곳에 잠든 노동열사라 할 수 있다. 그의 무덤 옆에는 비석을 아직 세우지 못했다. 화물연대에서 비문을 지어 곧 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3명의 노동열사가 이 곳에 묻힐 때 함께 했다는 손석형 민주노총 경남도본부장은 “다시는 이 땅에서 열사가 생산되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서 평등한 세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 안내를 맡은 김보경 부산경남울산열사정신계승사업회 사무국장은 "열사정신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현장에서 자본과 권력의 탄압에 맞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사의 투쟁을 자리매김하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요 노동열사, 조수원 박창수 배달호 등 무려 17명이나 묻혀
[조수원] 태백에서 태어났던 그는 28살이던 1995년 12월 민주당 서울시지부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대우정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해고되었고, 군 입영도 부당하다며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4년 복직 합의가 이루어졌고, 대우중공업 조선부문에 발령이 났다.
당시 복직투쟁과 병역문제 해결을 위해 38일간 단식농성을 벌였고, 당시 병역특례 해고노동자 문제에 사회적 관심이 컸다. 국회 국방위원회 청원심사소위원회에서 권고안을 내기도 했지만, 병무청은 시종일관 입대를 고수했다. 그러다가 95년 12월 15일 사망했다.
[배달호] 그는 올해 1월 9일 "두산중공업이 악랄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분신사망했다. 1981년 한국중공업에 입사했던 그는 1987년부터 노조 활동을 시작했고, 노조 간부로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올해 1월 창원 두산중 공장 내 노동자광장에서 분신한, 올해 50살의 늙은 노동자였다. 그의 분신사망은 노조의 재산가압류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권미경]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공장에 취업해 야학생활까지 하며 지내다가 1991년 회사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주)대봉 미싱공으로 있다가 '살인적인 노동문제'에 항거하며 투신할 때 그녀의 나이는 22살.
1991년에는 신발업계의 무더기 도산사태가 발생했고, (주)대봉은 노조의 협조 속에 구사운동이 일어났다. 이런 속에 그녀는 그 해 12월 6일 불량품을 낸 야간학교 학생노동자가 야단맞는 걸 보면서, '원가절감' '결근방지' '30분 일 더하기' 등 노동강화의 모순에 항거했다.
[신용길] 그는 전교조 활동을 하다 위암을 앓은 뒤 1991년 당시 34살에 운명했다. 부산대를 나온 그는 1989년 전교조 지부 결성식 때 축시를 낭송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파면되었으며,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다 위궤양이 발병해 병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1년 3월 병원에서 치료 중 위암으로 사망했다.
[박창수] 그는 대한조선공사 배관공으로 있다가 1990년 노조 위원장에 당선되었으며, 부산노련 부의장 등을 지냈다. 이듬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이문의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옮긴 뒤 이틀만에 죽었다. 나이는 33살이었다.
[양봉수] 1995년 5월 12일 그의 나이 29살 때 현대자동차 본관 정문 앞에서 분신을 기도, 31일간 사투 끝에 죽었다. 1992년 성과분배 투쟁과 관련해 해고되었으며, 이듬해 원직 복직되어 노조 대의원 등의 활동을 벌였다. 그는 1995년 라인 정지와 관련해 두 번째 해고자가 되었다.
[서영호] 그는 현대자동차 노조 간부로 활동하다 1992년 1월 12일 경찰 침투에 대비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던 중 차량사고로 병원에 입원, 이듬해 7월 1일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31살이었다.
[최대림] 고성에서 태어난 그는 1985년 대우조선에 입사해 일하다가 1998년 정리해고 되었으며, "근로자 파견법" 입법화에 반대하면서 건조 중이던 배 위에서 분신, 투진자살했다. 그는 "조합원들이 하나로 단결해 정리해고와 근로자 파견법을 저지하라"는 유서를 남겼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42살이었다.
<2003.09.20. 네이버 - 오마이 뉴스에서 발췌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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